여행지역 | 남산,시청,남대문,명동,을지로,광화문,종로.인사동,홍대,연남,여의도,이태원,강남,잠실,송파 |
호텔명/룸타입 | 시그니엘 서울/그랜드 디럭스 더블 |
체크인/아웃 | 15:00~11:00 |
투숙인원 | 2명 |
상품가격 | 620.000원 |
상세정보
서울 자유여행
호텔팩 3N4D
호텔명/등급-시그니엘 서울/5성급 객실 수-235 실 부대시설-사우나 휘트니스 센터 수영장 레스토랑-식당 베이커리 라운지 바 연회장-컨벤션&웨딩 와이파이-전객실 무료사용
사용객실 룸타입&넓이-그랜드 디럭스 더블룸 40~50㎡
룸타입-그랜드 디럭스(더블 only) 기준
추가요금-리버뷰/시닉베스-50,000원 인원추가시엑스트라 베드-50,000원
조식 뷔페 포함 상품입니다
조식 요금 성인-50,000원 소인-30,000원(소인 만4세~12세)
요금 적용 기간-2022년 12월 22일까지
적용 요금-일요일~목요일
특정 기간-금요일 토요일 :
■객실요금 조식요금에는 봉사료 부가세 21%가 가산됩니다.
■트윈 타입은 프리미어 이상부터 가능합니다.
■패밀리 트윈 타입은 없습니다.(엑스트라 베드 추가하여 3인 사용 가능)
객실 사용 고객 특전
★79층 살롱드 시그니엘(게스트 라운지) 무료 이용. 투숙객 2명까지 무료이 용. 1인 추가 50,000원(세금!0%,,봉사료10% 부과 됩니다)
★85층 휘트니스, 수영장 무료 이용. 트윈룸은 프리미어 이상부터 가능합니 다.
★패밀리 트윈룸 타입은 없습니다.(보조 침대 추가하여 3인 투숙 가능 합니 다)
◆지하철 안내
지하철-2호선 잠실역 2번 출구. 8호선 잠실역 10.11번 출구
주변 관광지
롯데월드타워-도보1분
롯데월드-도보 6분
올림픽 공원-도보 14분
■ 상품 예약 진행 안내
-먼저 상담 문의 하신 후 예약이 완료되면 결제가 진행 됩니다.
-호텔 예약 가능여부를 확인하여 고객님께 안내 드리고 있습니다.
□ 결제시 유의 사항
① 반드시 상담 문의 하신 후 결제를 진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② 삼삼투어 예약담당자에게 객실예약 확정 안내를 받으신 후 결제 부탁드 립니다.
③여행대금의 모든 결제 수단은 ㈜삼삼투어의 법인 계좌 및 ㈜삼삼투어 결 제시스템을 이용하셔야 하며, 그 외의 결제방법을 이용하실 경우 법적 보 호를 받으실 수 없습니다.
■ 포함/불포함/ 정보
포함내역-호텔 객실 1박요금 및 조식 뷔페 1회
■ 불포함내역-[교통]차량*유류비.왕복 항공권. 식사비_점심.저녁. 기타 간식비
[여행자 보험]국내 기본여행자보험
[기타]관광지 입장료등 개인경비
☞ 상품약관
본 상품의 예약과 취소는 국내여행 특별약관이 적용을 알려드립니다.
특별야관 적용 시 표준약관보다 높은 취소 수수료가 부과될 수 있으며 이 경우 동의 절차를 구합니다.
계약금 규정
본 상품 예약시 상품금액의 50%를 계약금으로 지급하셔야 되며 출발일 15일 전까지 나머지 금액을 결제 하셔야 됩니다.
취소와 예약변경료 규정
이 여행상품은 호텔비용을 선납해 놓은 삼품으로, 취소 혹은 예약변경시 하단의 취소료가 적용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약시 유의사항
1. 여행개시 11일전(~11)까지 통보시 : 계약금환급
2. 여행개시 10일전(10~10)까지 통보시 : 여행요금의 10% 배상
3. 여행개시 8일전(9~8)까지 통보시 : 여행요금의 80% 배상
4. 여행개시 1일전(7~1)까지 통보시 : 여행요금의 90% 배상
5. 여행당일 통보시 : 여행요금의 99% 배상
※취소,변경은 업무시간(09:00~18:00)중에만 가능합니다.
※토,일요일,공휴일은 취소 및 변경이 불가합니다.(주말 및 공휴일은 휴무)
■가이드/인솔자 및 미팅정보
-가이드, 인솔자-해당상품은 자유여행으로 가이드가 없습니다.
-미팅정보-해당상품은 자유여행으로 미팅이 없습니다.
여행코스
첫째날
1.양재천
관악산과 청계산에서 발원해 탄천까지 이어지는 지방하천이다. 1995년 양재천 공원화 사업을 통해 모범적인 자연 생태하천으로 복원됐고 2015년에는 서울특별시 미래 유산으로 선정됐다. 강남구를 지나는 구간은 약 3.75km. 물길 따라 펼쳐지는 풍광은 사계절 내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벚꽃길, 메타세콰이어길, 낙엽의 거리 등은 철마다 꽃과 나무로 물들어 주민뿐 아니라 외지인들의 발걸음을 끌어모은다. 이 밖에 전망대, 경관조명, 안개분수, 미디어 사파이어 등이 조성돼 있어 산책, 라이딩, 생태 체험, 휴식 등을 망라하는 웰빙 장소로 각광 받고 있다.
지하철 3호선 매봉역 4번출구에서 대치중학교 방향으로 300m
2. 코엑스,별마당 도서관
종합 전시관 코엑스는 한국종합무역센터 내에있는 최고의 문화, 관광 명소로서, 국제 무역의 전망을 밝히고 문화 교류의 장을 마련할 목적으로 개관되었다.
별마당 도서관은 센트럴플라자 중심에 총 2,800㎡ (약 850평) 복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13m 높이 서가의 은은한 불빛이 공간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는 편안한 서재를 컨셉으로 다양한 테이블과 노트북 작업이 가능하도록 콘센트가 마련되어 있다.특히 1층은 지하 1층의 선큰(Sunken) 공간을 조망하면서 여유롭게 독서 가능한 독립적인 공간으로 구성됩니다. 머물고 싶고 경험하고 싶은 공간, 별마당 도서관에서는 책을 읽어도,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좋다. 독서를 통한 사색과 여유는 물론, 누군가를 만나고 기다리는 약속의 장소로도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비움과 기다림, 삶을 충전하는 새로움을 만나는 곳.총 7만 여권의 장서를 갖추고 있다. 1층은 문학/인문학, 지하 1층은 취미/실용 관련 서적이 구비 되어 있고, 외국 원서 코너, 유명인의 서재 코너, 아이패드로 볼 수 있는 E-Book, 특히 해외 잡지까지 총 6백 여종의 잡지를 모아 놓은 잡지 특화 코너는 일반 도서관과 차별화된 별마당 도서관만의 차별점이다.
지하철 2호선 삼성역 5번,6번출구
3. 도심공항터미널
한국도심공항(CALT)은 1980년에 설립되어 1990년부터 사업을 개시한 회사로, 공항이 아닌 도심에서 입·출국 수속을 모두 처리하고, 승객은 리무진으로 공항으로 이동하여 바로 비행기에 탑승함으로써 공항에서 승객 대기 시간을 줄이고, 편의를 제공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무역센터의 경우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있으며, 이 곳은 단순히 발권 관련 업무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한 모든 기관이 상주해 있다. 각국 항공사를 비롯하여 법무부 출입국관리 출장소, 도심공항 병무신고 사무소, 인천국제공항 세관 신고 사무소까지 입주해 있어서 이른 바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하다. 모든 수속을 마친 승객은 전용 통로를 통해 리무진 버스에 탑승하면, 공항으로 가서 바로 항공기에 탑승하면 된다. 이 곳에는 강남구청 여권과가 있었으나 2007년 12월 10일부로 사무실을 철수하였다. 2018년 4월 기준으로 탑승수속이 가능한 항공사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진에어, 타이항공, 에어캐나다, 중국동방항공, 상하이항공, 중국남방항공, 네덜란드KLM, 미국 델타항공, 유나이티드항공, 에어 프랑스, 싱가포르 항공, 카타르 항공등이다. 도심 한가운데서 편리하게 탑승수속과 출국심사를 마치고 리무진 버스로 이동해 인천국제공항 전용출구로 출국할 수 있는 도심 속의 공항이다.
지하철 2호선 삼성역 5번,6번출구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 7번출구 도보 10분
지하철 7호선 청담역 2번출구
4. 봉은사
조선시대에 불교 사원을 대폭 축소하려는 정책에 따라 1406년 태종때에는 국가 인정 사찰이 242개사로 줄었고, 1424년 세종때에는 다시 전국의 사찰 중에서 선교 양종의 각 18개 사찰씩 36사만을 선정하여 3천 7백여 명의 승려만 인정하도록 하였다. 조선의 선교 양종제도 시행 시에 서울의 중심 사찰은 선종사원 흥천사와 교종사원 흥덕사였는데 연산군때에 흥천사와 흥덕사가 폐지되고 선교 양종 제도가 무너졌다. 중종때부터 봉은사는 중심 사찰로서 인식되고 있었는데, 도성 인근에서 규모와 위상이 큰 사찰로 봉은사가 흥천사와 흥덕사가 폐지된 대신 부상하였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봉은사가 전국 수사찰의 위상으로 떠오른 것은 명종때 문정왕후와 보우스님의 활동때문이며, 중종때 대대적으로 사찰을 모두 철거하려는 정책을 추진하였는데 봉은사를 그냥 두고서 다른 사찰을 철거하는 것으로는 승려를 근절시킬 수 없어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상소에서 봉은사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
5. 선정릉
빌딩 숲 속 오아시스처럼 자리한 삼릉공원 안에는 조선 제9대 왕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가 함께 잠든 선릉과,제11대 왕인 아들 중종이 안장된 정릉이 있고 이를 합쳐 선정릉이라 부른다. 경기도 고양군 원당읍 원당리에 안장되었던 중종의 정릉이 풍수지리가 좋지 않아 이 곳으로 옮겨졌다. 중종과 함께 안장되기를 바랐던 문정왕후는 이 곳 또한 여름마다 침수되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태능에 홀로 안장되어 있다. 사적 제199호이며, 2009년 6월 30일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유료)
지하철 2호선 분당선 선릉역 10번출구 도보 7분
지하철 9호선 분당선 선정릉역 3번출구 도보 16분
6. 국립국악원
국립국악원은 신라시대부터 오늘까지 천여년의 전통과 역사를 가진 문화예술 기관이다다.국립국악원은 남원에 위치한 국립민속국악원, 진도에 위치한 국립남도국악원, 그리고 국립부산국악원등 지역거점의 분화와 신설을 통해 전통예술의 온당한 보존과 계승, 전통에 기반을 둔 창조적 노력을 지속해왔으며 아울러 전통예술의 현대적 가치와 미래적 전망을 위한 꾸준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전통예술이 우리 삶에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고, 세계 무대에 자랑스럽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지하철 2호선 방배역 1번 출구.
지하철 7호선 내방역 3번 출구 .
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널역 5번 출구. 버스환승`
7. 예술의 전당
예술의 전당은 1982년부터 추진되어온 ‘예술의 전당 건립계획’에 따라 부지 23만1000㎡, 건축연면적 12만353㎡으로 1984년 착공하여 1993년 전체 개관하였는데, 문화적 주체성을 확립하고 한국문화예술의 국제적 연대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다.1988년 1단계음악당 ·서예관 개관을 하였고, 나머지는 단계별로 개관하였다. 600억원의 공사비로 축제극장, 음악당, 미술관, 자료관, 교육관등 예술전반을 수용할 수 있는 실내공간뿐만 아니라, 원형광장, 만남의 거리, 전통 한국정원, 야외극장 및 장터 등 옥외공간까지 두루 갖춘 세계적인 수준의 시설이다. 중심이 되는 축제극장은 한국문화의 한 핵심을 이루는 선비정신을 본뜬 갓 모양의 원형건물이고, 음악당은 부채모양으로 설계되었다.
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널역 5번 출구, 마을버스 환승
8. 서래마을
한국 최대의 프랑스인 거주 지역이다. 최소 수백 명의 프랑스인이 상주하고 있는데, 이는 대한민국 거주 프랑스인의 40% 정도에 해당하는 수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프랑스계 회사에 종사하는 인구이며, 주로 이들의 자녀들이 통학하는 서울 프랑스학교도 서래마을 안에 위치해 있다. 이외에 서래마을의 빌라촌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부촌 중에 하나이고, 많은 유명인사들이 거주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국에 머무는 프랑스인 절반정도가 살고 있다는 서래마을. 파리 노천카페 거리를 걷는 듯 골목마다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유명 세프를 앞세운 프렌치 레스토랑부터 분위기 좋은 와인바 카페등이 즐비하다.
지하철 3,7,9호선 고속버스터미널역 5번 출구, 도보 10분
9. 강남역 주변 및 지하상가 쇼핑센타
강남대로와 서초대로 테헤란로의 교차부에 위치해 있다. IT 업체를 필두로 대규모 오피스 사무지구가 1990년대부터 이곳에 들어서기 시작했고, 학원가와 유흥가 등이 차례로 들어서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유동인구가 생겨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10번, 11번 출구부터 신논현역까지는 대형 학원, 옷가게, 병원, 술집, 음식점 등이 빽빽하게 밀집된 번화가가 이어져 있다. 게다가 선릉역부근의 유흥가와 2010년대 중반 리모델링 이후 한동안 침체되었던 스타필드 코엑스몰의 효과까지 더해져 이곳 유동인구는 더 늘어난 감이 있다. 주말에는 각 출구에 지상으로 나가는 사람과 지하철을 타려고 내려가는 사람들이 얽혀서 혼돈의 카오스를 연출한다. 금요일 밤에는 새벽 1~2시까지 강남대로가 막히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을 정도. 다만 번화가 + 오피스 지구답게 물가는 상당히 비싼 편이다. 홍대. 이태원등과 함께 서울에서 유명 클럽들이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강남의 중심에 위치한 지하쇼핑센터에는 수많은 의류 매장과 액세서리 전문점 등이 모여 있고, 쾌적한 환경에서 쇼핑이 가능하다. 또한 허브플라자는 고객들에게 편안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지하철 신분당선 강남역
둘째날
1.몽촌토성. 몽촌 역사관
몽촌토성과 몽촌역사관은 올림픽공원내에 위치하고 있다. 올림픽공원 건설중 발견된 몽촌토성은 4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북쪽의 한강과 남쪽의 남한산성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백제초기에 현재 서울 지역을 수비하는 토성으로 이용되었으며, 동쪽에 흙으로 쌓은 흔적이 남아 있다. 몽촌토성에서 움집터와 독무덤·무기·낚시바늘·백제 토기·돌절구 등이 출토되었다. 현재는 몽촌토성의 비탈면에 소나무 숲이 자리하고 있어 사철 푸른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1982년 7월 22일 사적 제297호로 지정되었다. 둘레는 약 2.7km이며, 높이는 6~7m이다. 3세기 초에 축조되었다. 1984년,1985년의 2차례에 걸친 발굴 조사 결과, 목책구조와 토성 방비용해자로 되어 있는 특수한 토성구조임이 밝혀졌다. 몽촌토성, 풍남토성 등을 발굴하면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데. 백제 문화의 흔적을만날 수 있는 곳이다. (입장료 무료. 09:00~18:00 ,월요일. 1월1일휴무)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 1번 출구, 도보 30분
2. 올림픽공원
1998년 서울 올림픽을 위해 건설되었으며, 현재는 일반적인 종합 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싸이클· 역도· 펜싱· 수영· 체조· 테니스등 6개의 경기장 등의 경기 시설과 소마미술관 등 다양한 문화 시설들이 함께 있다. . 올림픽공원은 야외조각공원을 비롯하여 88놀이마당, 음악 분수 등과 같은 휴식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기타 주요 시설로는 올림픽회관, 올림픽 파크텔 등 각종 편익시설이 구비되어 있다.(입장료:무료 05:00~22:00)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 1번 출구
지하철 9호선 올림픽공원역 3,4번출구
3. 롯데월드타워.롯데월드몰
롯데월드타워는 그 무게가 서울시 성인남자 75kg 기준으로 인구 1000만 명의 몸무게와 같은 75만톤이다. 롯데월드타워는 이런 하중을 견디도록 지하 38m깊이까지 터를 파고 그 화강암 암반층에 30m길이, 직경 1m의 파일 108개를 설치했다. 그리고 그 위에 좌우 길이 72m, 두께 6.5m의 국내 최대이자 세계적인 규모인 기초 매트(MAT) 공사를 진행했다.5300대의 레미콘이 32시간 동안 8만 톤의 고강도 콘크리트를 부어 만든 이 기초매트는 축구장 크기의 80% 규모로,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보다 1.8배나 두껍고 콘크리트 양도 2.5배 많아 더욱 견고하다.
총 공사에 84제곱미터 아파트 5500가구 가량을 지을 수 있는 규모의 콘크리트가 투입됐다. 초고층 건물은 화재로 인한 고열로 기둥을 감싸는 콘크리트가 견디지 못하고 철골이나 철근이 녹아 붕괴가 일어나는 것에 반해 롯데월드타워는 일반 콘크리트의 3배 이상 고강도이자 화재 발생시 최소 3시간 이상 버티는 고내화 콘크리트를 사용했다.
롯데월드 몰은 2014년 10월 영업을 시작한 롯데그룹의 대형 쇼핑몰로 롯데월드타워와 연결되어 있고 복합쇼핑몰과 편의시설,문화공간등이 들어서 있다
지하철 2,8호선 잠실역 2번,11번 출구
4. 롯데월드 어드벤처
실,내외 놀이시설을 갖춘 테마파크로 어린이, 청소년에게 환상적인 코스
(평일 09:30~22:00, 주말 09:30~23:00)
지하철 2,8호선 잠실역 4번출구
5. 석촌호수
1960년대까지도 석촌호수는 물이 흐르는 송파강의 일부분이었다. 일제강점기까지 송파와 강북을 잇는 송파진(송파나루)도 석촌호수에 있었다. 석촌호수가 송파나루공원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송파진처럼 큰 나루터가 한강변도 아닌 석촌호수에 있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잠실은 상전벽해가 되었다.본래 한강은 두 갈래의 물 흐름이 있었는데, 본류는 지금의 석촌호수를 지나던 송파강이었고 지류는 지금의 한강 본류가 된 신천강이었다. 송파진은 바로 한강 본류였던 송파강 강변에 세워졌던 나루터였다. 옛 송파진의 터는 현재 송호정이 있는 자리다.최근 대형 공공전시의 원조격인“러버덕”이 돌아와 MZ 세대를 중심으로 인증샷 열풍이 불고 있다(러버덕은 네덜란드 작가 플로렌틴 호프만이 만든 노란색 고무 오리 인형이다)
지하철 2호선 2번출구
지하철 8호선 7번출구
지하철 9호선 석촌역 도보 3분
셋째날
1.광화문광장
임진왜란 시기 광화문이 화재로 소실된 후에도 광화문 앞길은 육조거리로, 궐외각사(闕外各司)들이 모여 있는 중심 관청가였다. 광화문은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복원됐지만, 1910년 한일 강제 병합 이후 경복궁 내에 조선총독부가 세워지면서 경복궁 동쪽으로 강제 이전되었다. 제3공화국 시절 콘크리트로 광화문이 다시 만들어지고 위치와 건축소재면에서 고증 논란이 끊이지 않다가 2008년 고증을 통해 원래의 자리에 제대로 복원되었다. 광화문의 소실과 복원은 수차례 반복되었지만, 그 와중에도 광화문 앞길은 여전히 대한민국의 중심공간으로, 다양한 근, 현대사를 겪으며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화합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광화문의 복원과 함께 2009년 광화문 앞길은 장소의 의미와 기능에 맞게 처음으로 광장의 모습을 갖추었다.
2.세종문화회관,세종이야기.충무공이야기
세종문화회관은 한국 공연예술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추억의 공간,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예술기관으로 20여 년간 그 명성을 유지해 왔습니다.
이후 세종문화회관은 세종대극장 리모델링에 이어 세종체임버홀, 세종M씨어터, 예술동 증축, 세종미술관, 세종S씨어터 등 하드웨어의 개편을 진행했고 예술로 동행 등 각종 문화행사를 통하여 서울시 문화예술 허브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세종문화회관은 문화향유 기회를 확대하고, 문화 창달에 기여할 수 있는 문화예술 운영을 통해 시민문화 복지구현에 이바지함을 설립목적으로 시민이 더 행복한 예술 랜드마크를 만들어 가고 있다.
3.국립고궁박물관
경복궁내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 대한제국시대의 왕실 복식 및 생활 관련 유물 약 40,000여 점을 소장·전시하고 있다.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의 궁궐 유물들을 전문적으로 수집, 전시하는 박물관이다.
4.경복궁
시경(詩經)주아(周雅)에 있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는 영원토록 그대의 크나큰 복(景福)을 모시리라.’라는 시(詩)를 외우고, 새 궁궐을 경복궁(景福宮)이라고 이름 짓기를 청하오니, 전하와 자손께서 만년 태평의 업(業)을 누리시옵고, 사방의 신민으로 하여금 길이 보고 느끼게 하옵니다.원래는신진사대부가 계획한 궁궐이기 때문에 '검이불루 화이불치'(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라는 유교 이념을 반영하여 이전 왕조들의 궁궐에 비해 화려한 장식 없이 수수하고 검소한 형태로 지어졌었다. 배치는 유교적인 관점에 따라 삼문삼조의 형태로 되어 있었다.
임진왜란전 조선 전기 동안 조선 왕조의 법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경복궁은 법궁으로서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엄정한 기하학적 공간 분할, 반듯한 축선 상의 건물 배치, 정연한 대칭 구조로 설계되었다.이궁인창덕궁(+창경궁)과 양궐 체제를 갖췄는데, 임금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두 궁궐을 번갈아 가며 사용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그 자리만 출입이 금지된 채 200여년 동안 재건되지 못하다가흥선대원군이 재건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참고로 흥선대원군이 지은 경복궁과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경복궁의 모습은 다소 차이가 있다.세종이 왕자 시절 2층에서 자다가 병이 났다는 등 다층 건물에 대한 기록이 눈에 띈다. 또한, 근정전에 청기와를 얹었다는 언급 등 차이점이 보이며, 임진왜란 이전에 조선 왕실에서 제작했다는 석가탄생도 등에서 묘사된 건축 양식을 통해 그 당시의 경복궁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최대 규모 5,000칸까지 서서히 확장되었던 이전 건물과 다르게 흥선대원군은 단숨에 7,400칸짜리로 중건했다. 단숨에 1.5배 크기가 된 것이다.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해 있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경복궁역이며, 5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경복궁의 정문인광화문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안국역이나광화문역에서도 걸어갈 수 있다. 경복궁 앞길에는 각종 관청이 있어 육조 거리라고 불렸으며, 이 길이 오늘날의세종대로.당대에도 국가의 중심 거리였기 때문에 육조 거리는 지금의 세종대로의 폭과 거의 같은 폭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현재 세종대로 중앙에는광화문광장이 있다. 주변에는청와대,헌법재판소,정부서울청사,주한미국대사관,세종문화회관등이 있으며,인사동거리도 경복궁에서 가까운 거리다.
5.국립민속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은 생활양식의 변화에 따라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일상생활 자료들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구입·기증·기탁 등 다양한 방법으로 수집된 자료는 과학적으로 보존 처리를 한 후 민속자료 분류 기준에 따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조사연구 활동으로 민속 현장의 사진, 필름, 영상자료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또한 민속학 전문서적, 다양한 멀티미디어 민속자료를 체계적으로 민속아카이브에 정리·축적하여 이용자들이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습니다.
6.국립현대미술관
지하3층, 지상 3층 규모로 8개 전시장과 교육시설 및 도서 아카이브를 포함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건축되었다.기능적으로 도심 속에 위치해 일상 속의 미술관과 설치미술 중심의 관람자 중심형 현대 미술관을 지향하고 있다. 건축적으로 전시영역과 교육영역 및 사무영역으로 나눌수 있으며,종친부와 구기무사등의 기존 유적과 함께 7개의 동으로 나누어 마당들을 중심으로 분산 배치되어 있다. 외관은 주변경복궁과북촌등의 경관과 조화로운 형태로 분절되었으며,테라코타타일을 주재료로 사용하였다.
7.창덕궁
태조는 조선 건국 3년차인1394년(태조 3년)에한양으로 천도해 정궁(법궁)으로경복궁을 지었지만제1차 왕자의 난이후 즉위한정종은1399년(정종 1년)에 옛고려의 수도인개경으로 수도를 다시 옮겼다. 그러나 정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태종은한양으로 재천도를 결정했다. 재천도를 위한 사전 작업으로 태종은 향교동에 이궁(移宮) 건설을 명해1404년(태종 4년)에 공사를 시작하여1405년(태종 5년)에 완공했다. 그 궁이 바로 창덕궁이다. 그러나 한양에 이미 경복궁이 있는데 굳이 새 이궁을 짓는 것은 태종이 경복궁에서 머물기 싫다는 의미였다. 조선시대 임금들은 이러한양궐 체제(兩闕體制)의 두 궁 사이를 오가며 번갈아가며 거주한 경우가 많았다.태종은 창덕궁을 완공하기 직전에 개경을 떠나 한양에 도착하는 그 길로 경복궁이 아닌 창덕궁으로 이어했다.1405년(태종 5년) 한양으로 돌아온 이래 태종은 1418년(태종 18년)에 아들세종에게 양위할 때까지 주로 창덕궁에서 거처했다. 태종은 자신이피바람을 불러일으킨 곳이라 그런지 경복궁을 기피했다. 다만, 커다란 국가 중요행사들은 주로 경복궁의근정전이나경회루등에서 열었다.1405년(태종 5년) 창건 당시 창덕궁의 규모는 외전 74칸, 내전 118칸 규모였다. 궁궐로 기능하기 위한 기본적인 기능들은 일단 다 갖춘 상태였지만, 일단 완공한 이후에도 창덕궁 증축 공사를 계속 했다. 1412년(태종 12년)에는 정문인돈화문(敦化門)을 세웠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출구 300미터 직진
8.창경궁
창경궁은 경복궁, 창덕궁에 이어 세 번째로 지어진 조선시대 궁궐이다. 조선 왕조는 건국 초기부터 경복궁을 법궁으로, 창덕궁을 보조 궁궐로 사용하는 양궐 체제를 이어왔다. 그러나 역대 왕들은 경복궁보다는 창덕궁에 거처하는 것을 더 좋아하였고, 왕실 가족이 늘어나면서 차츰 창덕궁의 생활 공간도 비좁아졌다. 이에 성종이 왕실의 웃어른인 세조 비 정희왕후, 예종 비 안순왕후, 덕종 비 소혜왕후 등 세 분의 대비가 편히 지낼 수 있도록 창덕궁 이웃에 마련한 궁궐이 창경궁이다.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에서 770m
9.운현궁
고종이 12살까지 살았던 운현궁은 철종 때 옛 관상감 터였던 운현궁에 왕기가 있다는 내용의 민요가 항간에 유행하였으며, 고종이 등극한 후 대원군이 운현궁 터를 다시 확장하였다. 운현이란 기상관측등을 관장하던 서운관 앞의 고개 이름으로 운현이란 서운관의 약칭이다. 고종이 즉위한 뒤 운현궁으로 부르게 된 것은 왕이 되기전에 살던 집을 왕위에 오른 후 본궁이라고 하는 선례와 ‘운현’이라는 지명에 유래하여 운현궁으로 불리게 되었다( 입장료:무료 월요일:휴관)
3호선 안국역 4번 출구
10.북촌한옥마을
북촌은 조선시대에 조성된 양반층 주거지로서 1930년대에 서울의 행정구역이 확장되고, 도시구조도 근대적으로 변형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주택경영회사들이 북촌의 대형 필지와 임야를 매입하여, 그 자리에 중소 규모의 한옥들을 집단적으로 건설하였는데, 현재 한옥들이 밀집되어있는 가회동 11번지와 31번지, 삼청동 35번지, 계동 135번지의 한옥주거지들이 모두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대청에 유리문을 달고, 처마에 잇대어 함석 챙을 다는 등 새로운 재료를 사용한 북촌의 한옥은 전통적인 한옥이 갖고 있는 유형적 성격을 잃지 않으면서, 근대적인 도시조직에 적응하여 새로운 도시주택유형 으로 진화했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북촌의 한옥은 한옥을 대량으로 지어야 하기 때문에 목재소에서 공급되는 표준화된 목재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였으며, 전체적으로 전통한옥의 특성을 유지하고 있으면서, 새로운 조건에 적응하며 새로운 도시 주택유형으로 정착되었다. 북촌 한옥의 특징은 크게 진화된 구법과 장식화 경향이라는 두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낮은 지붕물매, 굴도리, 겹처마, 좁은 주간에 많은 칸수 등 전통한옥과 배교할 때 비록 온전히 품격을 갖추지 못했지만, 북촌한옥에는 한옥의 구성과 아름다움이 응축되어 있다. 북촌한옥마을은 당시의 한옥 분양광고에서 볼 수 있듯, 밀도와 익명성에 대한 도시주택으로서의 요구를 반영하며 새로운 도시주택유형으로 정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
11.인사동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인사동은 조선시대 한성부 관인방의 인과 대사동의 사를 취해 지금의 명칭이 되었다. 조선 초기 도화서 터가 이곳에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미술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후 1930년대에 골동품, 고미술 관련 상가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1980년대에 화방, 고가구점, 민속공예품 점포들이 생겨나면서 전통문화 거리로서의 명성이 더욱 확고해졌다. 지금은 전통가게들과 찻집, 현대식 건물이 어우러져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으며 곳곳에 역사적 흔적들이 남아 있어 인사동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 6번 출구. 사거리에서 좌회전
12.종묘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후 및 추존된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신 사당으로서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종묘는 태조 3년 조선 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해 12월에 착공하여 이듬해인 9월에 완공 하였으며, 곧이어 개성으로부터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신주를 모셨다. 현재 정전에는 19실에 49위, 영녕전에는 16실에 34위의 신주가 모셔져 있고, 정전 뜰앞에 있는 공신당에는 정전에 계신 왕들의 공신 83위가 모셔져 있다.
지하철1.3.5호선 종로 3가역 8.11번출구 200m.
13.대한민국역사박물관,어린이 박물관
대한민국의 역사를 시대별로 4개의 전시실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제1전시실에서는 대한민국의 태동(1876년-1948년) 제2전시실에서는 대한민국의 기초확립(1948년- 1961년) 제3전시실에서는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1961년 –1987년) 제4전시실에서는 '대한민국의 선진화 세계로의 도약(1987년- )을 주제로 전시가 구성되어 있다.
어린이 박물관에서는 어린이가 직접 체험하면서 근현대사를 배울 수 있고 근현대사 전반에 걸친 다양한 주제의 특별전시를 통해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대한 심층적인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어린이 박물관에서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과 문화행사도 운영하고 있는데 근처 세종이야기와 광화문, 경복궁 등이 있어 그 시대 상황에 맟춰 역사를 한층 더 깊이 있게 알아 볼 수 있다.(입장료:무료)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 도보 2분
14.조계사
한국의 자주적인 불교를 이루려는 스님들의 의지로 건립한 각황사가 시초가 되었고 일제강점기까지 전북 정읍시에 위치하며 태고사라는 명칭이 있었으나 해방 이후에는 현재의 종로구로 옮기며 조계사로 불리게 되었다. 조계라는 이름은 혜능대사가 조계산에 머물렀다 하여 유래된 것이다. 조계사에 들어서면 마주하는 대웅전의 모습 역시 정읍에 있던 건축물을 그대로 옮겨와 지은 것이라고 한다.해방 이후에 일제의 흔적을 말끔히 정리하고 새롭게 태어난 조계사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10층 석탑, 수백 년간 자리를 지킨 듬직한 굵기의 천연기념물 백송과 회화 나무가 있어 그윽한 운치를 더하죠. 사찰의 열린 문 사이로 시선을 옮기다 보면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인 우아한 목불좌상의 인자한 눈길과 마주치는 특별한 순간도 경험할 수 있다.
지하철 1호선 종각역 2번 출구 415m
15.청와대
청와대는 “푸른 기와집”이란 의미로 대한민국 제1대- 제19대 대통령까지 대한민국 대통령이 공무와 기거를 했던 대통령관저로 사용했으며, 20대 대통령이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2022.5.10.일부터 일반인도 관람할 수 있도록 전면 개방하였다. 조선시대 청와대는 하늘아래 제일 복된땅이라는 배산임수에 위치하여 경복궁 북쪽후원으로 사용되었으며 왕이 이곳에서 나라의 근본인 농경을 직접 체험하던 장소이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 도보 15분 거리.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
도보 20분 거리
넷째날
1.서울시청
서울은 현재 대한민국 의 수도이다. 서울시청은 서울특별시의 행정을 총괄하는 기관이자 그 기관이 입주한 건물을 줄여 서울시청이라 부른다. 신석기시대부터 2000년의 역사를 가진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문화유적을 다 보유한 서울시는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패망과 함께 식민지 수도 경성에서 대한민국 수도 서울로 다시 태어났다.현재 구청사는 도서관으로 활용하고 있고 신청사는 문화재관련 부지에 걸린 각종제약으로 시장실과 밀접한 관련있는 부서만 들어가 있다 .신청사의 지하에 시민을 위한 공간과 시청광장의 이벤트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가 볼 만하다
지하철 1,2호선 시청역 1~7번 출구
2.덕수궁
덕수궁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주로 피난 갔던 선조가 다시 한양으로 돌아왔을 때, 월산대군 저택과 그 주변 민가를 여러 채 합하여 행궁으로 삼았던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후 광해군이 즉위한 후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경운궁’이란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궁궐의 모습을 갖춘 덕수궁은 인목대비 유폐와 인조반정을 겪으면서 규모가 축소되었고, 특히 인조가 즉위한 이후 즉조당과 석어당을 제외한 나머지는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어 덕수궁은 더 이상 왕이 공식적으로 머물며 국정업무를 보던 궁궐의 기능을 하지 못하였다.1895년 을미사변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후, 1897년 2월에 덕수궁으로 환궁하게 되고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한 후 황궁으로서의 규모와 격식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1904년 덕수궁 대화재와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 이후 덕수궁은 그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고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이름 또한 바뀌게 되었다.덕수궁의 돌담길과 전통정원은 도시내 힐링장소로 산책을 좋아하는 여행자의 마음에 평강을 선사한다.
지하철 1호선 시청역 2번출구
3.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은 시대와 미술의 변화에 부응하고, 서로를 채우며 성장해 가는 네트워크 미술관입니다. 사용자, 매개자, 생산자 모두가 함께하는 공동의 기억을 짓고, 뜻깊은 사회문화적 가치를 일구는 미래를 상상합니다. 서울 전역에 펼쳐진 각 분관들이 시대와 미술의 변화에 조응해 교차하고, 서로를 채우고, 매일 성장하는 ‘서울형 네트워크 미술관’입니다.현대미술을 매개로 활력과 매혹이 가득한 서울과 세계 도시를 연결하여.익숙함과 낯섦이 함께 존재하는 오늘의 풍경은 우리에게 다층적인 시간과 공간, 여러 사유와 이념에 반응하기를 요청한다. 미술 안팎을 넘나드는 문화예술의 풍부한 상상력을 우리 생활 속에 불어 넣는다.큐레이팅의 선도성과 서울시정의 공공성이 연동되는 다양한 사업 운영을 통해 책임운영기관으로서 책무를 다하고 지속적인 성과를 달성하고 있다.. ‘서울형 네트워크 미술관’의 비전을 구현하기 위하여 체계적인 조직을 마련하고 분관 체제 운영에 대한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보는 미술이 아니라 함께 체험하는 미술.움직이는 세상의 중심에 내가 있고 동시간대에 세게 곳곳의 삶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는 시스템.전통적인 미술관이 아니라 미래형 미술관의 모습이 보인다
지하철 2호선 시청역10번 출구 도보 384m
4.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서울시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여 보여 주는 도시역사박물관으로 주로 조선 중기 이후부터 20세기말 까지의 자료와 전시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2002년 5월 21일 개관하였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사라져 가는 문화유산을 수집·보존·연구·전시·교육을 통해 서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시민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기관으로, 한성백제와 조선왕조의 수도로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으로 발전해온 서울의 지리와 인문, 역사에 중점을 둔 전시를 하고 있다.
지하철5호선 광화문역 7번출구 470M 7분소요
지하철5호선 서대문역 4번출구 600M 8분 소요
지하철3호선 경복궁역 7번출구 720M,10분 소요
지하철호선 시청역 1.2.3번출구 850M 15분 소요
5.남산타워
세계 유명한 종합 탑들이 그 나라 또는 그 도시의 상징적인 존재가 된 것처럼 '남산서울타워' 역시 지난 40여 년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서울의 상징물 역할을 해왔습니다.‘남산서울타워’는 서울 시내 전 지역에서 바라보이는 탑의 높이와 독특한 구조, 형태 등으로 인하여 시민의 관심과 사랑의 대상이 되었고, 내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제1의 관광 명소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류 바람을 몰고 온 각종 예능, 드라마의 촬영지로 이름이 높아지면서 내외국인 관광객들이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남산서울타워’는 높이 240m, 면적 290만㎡의 높고 넓은 공원으로 조성된 남산 정상에 자리 잡고 있어 360도 전 방향으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천혜의 입지조건을 갖춘 탑으로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습니다.
6.남산공원
남산은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한 서울의 상징으로서 높이는 해발 265m로서 본래 이름은 인경산이었으나 조선조 태조가 1394년 풍수지리에 의해 도읍지를 개성에서 서울로 옮겨 온 뒤에 남쪽에 있는 산이므로 ‘남산’으로 지칭되었고 풍수지리상 안산으로 중요한 산이다. 나라의 평안을 비는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산신령을 모시는 신당을 세워 목멱대왕 산신을 모시고 있어 목멱신사라고 불리고 이때부터 인경산은 목멱산으로 불렸다.
1940년 3월 12일 공원으로 지정하여 1968년 9월 10일에 개원하였으며 1991년부터 8년간 “남산제모습가꾸기” 사업으로 공원 내 부정적 시설 89동을 이전하고 야외식물원을 조성하는 등 중구 예장동, 회현동, 용산구 한남동 일대를 대대적으로 복원, 정비하여 시민들에게 휴식과 맑은 공기를 제공하며 여가생활의 중심지로 거듭난 공원이다.
7.남산골한옥마을
서울시내에 산재해 있던 서울시 민속자료 한옥 다섯 채를 이전, 복원하고 이 한옥에 살았던 사람들의 신분 성격에 걸맞은 가구 등을 배치하여 선조들의 삶을 재조명하였습니다. 전통정원 내에는 그동안 훼손되었던 지형을 원형대로 복원하여 남산의 자연식생인 전통 수종을 심었으며, 계곡을 만들어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하였고, 또한 정자·연못 등을 복원하여 전통양식의 정원으로 꾸몄습니다.정원의 서쪽에는 물이 예스럽게 계곡을 흐르도록 하였고, 주변에는 고풍의 정자를 지어 선조들이 유유자적하였던 남산 기슭의 옛 정취를 한껏 느끼도록 하였습니다. 전통정원 남쪽에는 서울 정도(定都) 600년을 기념하는 타임캡슐을 1994년 11월 29일 지하 15m 지점에 매설하였습니다.보신각종 모형의 타임캡슐 안에는 서울의 도시 모습, 시민 생활과 사회문화를 대표하는 각종 문물 600점을 수장함으로써 현시대의 사회상이 400년 이후인 2394년 11월 29일에 후손들에게 공개되도록 하였습니다.사대부가의 전통 혼례 예법따른실제 전통 혼례도 가능합니다. 유료
8.남대문시장
조선 태종 14년인 1414년 조정이 감독하는 시전 형태로 출발한 남대문시장은 광복 이후 남대문시장상인 연합회가 꾸려졌으며 1964년 건물주와 상인들이 공동 출자한 주식회사의 형태로 이어져 6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1414년 나라에서 몇몇 상인들에게 정부 임대전 형식으로 자리를 내 준 게 시초로 꼽힌다. 1608년 선조 41년 대동미,포,전의 출납을 맡아보는 선혜청이 지금의 남창동에 설치되면서 지방 특산물 등도 매매됐다.1897년에는 최초의 근대적 상설시장으로 상거래의 기틀을 잡기 시작했다. 남대문시장은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비롯해 각종 크고 작은 화재 등으로 다사다난한 고초를 경험하면서도 발 빠르게 회복하며 대한민국 최고 최대 시장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지하철 4호선 회현역 6번출구
.
9.명동
매일 약 2백만명 이상이 방문하는명동은 명실공히 ‘대한민국 관광 1번지’로 손꼽힌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해 쇼핑과 금융, 문화의 허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며, 거리는 고급 백화점과 레스토랑에서부터 각종 화장품 브랜드, 의류 브랜드 매장, 영화관 등이 들어서 있어 하루 종일 활기로 가득하다. 명동은 조선시대 때만 해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주거지였으나, 일제강점기 때 충무로 일대가 상업지구로 개발되면서 상업지역으로 변모했다. 1923년 이후 서울의 대표 번화가로 자릴 잡았고, 6·25전쟁 직후 정부가 추진한 재건사업을 통해 오늘날과 비슷한 모습을 갖추게 됐다. 현재는 서울 소비문화의 중심지로, 내외국인의 사랑을 받는 번화가로 거듭난 명동이 외국인들로 가득하다
.
10.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위치한 복합 문화 공간입니다. 2014년 3월 21일 개관한 이래 DDP에서는 각종 전시, 패션쇼, 신제품발표회, 포럼, 컨퍼런스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DDP는 디자인 트렌드가 시작되고 문화가 교류하는 장소입니다. 세계 최초 신제품과 패션 트렌드를 알리고, 새로운 전시를 통해 지식을 공유하며, 다양한 디자인 체험이 가능한 콘텐츠로 운영됩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DDP는 아시아로, 세계로 향하는 ‘디자인·패션산업의 발신지’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지하철 2,4,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연역 1,2번 출구, 도보 3분
11.두타,밀리오레.동대문시장,평화시장
두타.밀리오레,동대문시장,평화시장은 서로 근접해 있으며 동대문에 있다.동대문은 종로5가역부터 동대문 지하철역까지 재래시장이 형성되어 있으며 시장이 현대화 되면서 대형 패션몰들이 생겨났다. 동대문 밀리오레도 그 중 하나이며 이 패션몰의 주 고객층은 10대이다. 10대들이 주 고객층의 80%를 차지한다. 그만큼 10대 감각에 맞는 옷들이 매장을 꽉 채우고 있다. 동대문에는 다양한 제품, 저렴한 가격이라는 재래시장의 장점과 깨끗하고 현대적인 건물과 다양한 부대시설이라는 백화점의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는 패션몰이 즐비하다.
동대문시장은 의류재료인 원단부터 의류 부자재, 액세서리등과 일부 혼수용품을 파는 대규모 전문시장으로 한국내 원단의 80% 거래가 이뤄지는 곳이다.
지하철 1.4호선 동대문역 9번출구
평화시장은 의류를 생산 판매하는 도매시장으로 60년역사가 있다. K패션을 선도하는 시장으로 디자인에서 제작 배송까지 72시간안에 이뤄지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대단하다.
지하철 2.4.5호선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역 1번출구
지하철 1.4호선 동대문역 6번출구
12.청계천
청계천으로 인해 서울시는 인간중심의 환경도시로써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365일 다양한 행사와 공연이 펼쳐지는 청계광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조형물과 주변 관광지를 연계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관광코스이다.
13.광장시장
광장시장은 1905년 일제가 화폐정리사업을 단행하면서 조선 상인의 기반을 흔들자 조선상인들이 그해 7월에 광장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일본인들이 경영권을 행사하던 다른 시장과 달리 순수 조선 자본을 바탕으로 하여 조선인 시장의 명맥을 꿋꿋이 지켰다.110년 전통으로 다양한 먹거리의 맛과 포목.구제상품등 멋스런 전통시장인 광장시장에서외국인 관광객 인기 먹거리는 빈대떡과 모듬전, 마약김밥, 순대와 머리고기, 육회, 동그랑땡이다.
지하철 1호선 종로5가역 8번 출구
14.대학로
젊음의 열기가 가득한 이곳 '대학로'는 대한민국의 예술, 공연, 자유등을 대표하는 문화 집결지라 할 수 있다.서울대가 자리한 시절, 주변의 대학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어떤 장소와도 비교가 안될 대학로만의 개성을 만들어 갔다.1975년 서울대학교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마로니에 공원이 조성되었고그이후 젊은이들과 방문자들을 위한 연극, 뮤지컬 등의 크고작은 문화시설들이하나 둘 들어서게 되면서 오늘날의 대학로가 불리게되었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 1번 출구